80대 남환이었다.

80대 남환이었다. 요양 병원에 몇 달 간 입원해있던 분으로 가래에서 두 차례 결핵균이 나왔다고 한다. 결핵균은 비말(침 방울)로 전염이 되기 때문에 격리방이 필요한데 해당 요양 병원에는 격리 병실이 없어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으로 전원되었다고 진료소견서는 말하고 있었다. 병원을 옮겨다닌 일이 흔했던 듯 비슷한 나이대의 보호자 아내분은 지쳤지만 익숙한 기색이었다. 입원을 위해 응급실에 방문한 40-50대의 환자나 보호자들과 달리 입원 짐은 거의 없었다. 작은 보따리 두 개 정도. 그것이 노부부 두 명이 입원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부피였다.

 

이미 요양 병원의 병원장님이 내가 일하는 병원의 병원장님께 전화를 해 놓은 상태라 입원수속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입원에 필요한 기본 검사를 하고 응급실에서 한 시간여쯤을 누워있은 뒤에 환자는 병실로 올라갔다. 그것이 나와 그 80대 환자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 알았다. 응급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렇듯이.

 

본원에서 인턴을 할 때는 없는 일이지만 파견을 나간 병원에서는 종종 임종 선언을 할 때가 생긴다. 환자를 담당하는 과장님들은 모두 퇴근하시고 병원에 의사라고는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 인턴밖에는 없을 때. 사망 선언을 해야 환자가 영안실로 갈 수 있고 이미 임상적으로 사망한 환자를 계속 병실에 눕혀 놓을 수는 없기에, 밤 중에 입원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응급실의 인턴이 병동으로 올라가 환자의 사망 선언을 한다.

 

밤에 사망 선언을 할 환자가 있다는 병동의 연락을 받고 올라간 병실에는 낮에 보았던 그 환자분이 누워 계셨다. 낮에 보았던 보호자분은 여전히 혼자인 채로 환자 옆을 지키고 계셨다. 처음 응급실에서 만났을 때보다 표정은 오히려 평온해 보이셨다. 움직이지 못하고 간단한 말 몇 마디, 눈만 가끔 마주칠 수 있는 환자를 보는 일은 평생을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다. 그러나 아내분의 ‘차라리 편안하게 잘 갔어…’라는 말은 병수발을 도맡았던 본인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지난 몇 년을 병원 침대에 누워 보냈어야 했던 환자에게 하는 말로 들렸다. 몇 년 간의 병원 생활, 가끔 있었던 퇴원과 재입원, 전원은 병수발을 해야 하는 보호자 뿐 아니라 환자 본인에게도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의외로 담담하신 보호자 옆에서 첫 사망 선고를 하고 덥고 습한 여름 공기 냄새를 맡으며 내려오면서 의사로서 살아가는일이 참으로 쉽지 않겠구나, 하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공포영화에서 주인공이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장면. 주인공의 눈으로 보이는 풍경에 위험한 요소는 아무 것도 없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주인공의 불길한 느낌이 맞았던 것으로 드러나는 진행처럼. 가장 존엄해야 하는 ‘사람’의 시작과 끝을 모두 의사라는 같은 ‘사람’이 주관한다는 일이 무겁게 느껴졌다.

 

같은 ‘사람’이 이런 중요한 일을 해도 되나 싶지만. 정말 왜 내게 이런 일이 주어진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3학년, 의대에 원서를 쓸 때는 아무도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내’게 이 길이 주어진지는 모르겠지만 묵묵히 걸어가야지.

 

오늘 밤에도 여전히 응급실에는 그들 몸의 어딘가가 아픈 환자들이 밀려오고, 그 중심에 내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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